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잠피에로 보니페르티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1954-55시즌, 보니페르티는 [[SS 라치오]]와의 시합에서 팀이 끌려가고 팀 동료 굴리엘모 오페초가 퇴장을 당해 어려운 시합을 치르고 있었다. 보니페르티는 경기 중 스코어까지 벌어지자 지그바르트 뢰프그렌에게 거친 파울을 범했고 보니페르티와 파울을 당한 뢰프그렌 그리고 라치오의 렌조 사씨는 주먹다짐을 벌였다. 이 사건의 결과는 당연히 퇴장이었고, 2월 13일의 사건이라 칭해진다. * 보니페르티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는 [[인테르나치오날레]]와의 [[더비 매치]]인 [[데르비 디탈리아]]였다. 여기에서 유벤투스는 [[오마르 시보리]]가 '''6골을 퍼부으며 인테르를 9대1로 학살했는데''' 역대 데르비 디탈리아의 경기 중 가장 큰 점수차가 난 경기이다. 인테르의 출전 선수 중 이 날 데뷔를 한 18살짜리 어린 축구 선수가 있었다. 소년 선수의 데뷔전은 이렇게 처참하게 끝났는데 이 소년 선수는 바로 후에 인테르의 60년대 전성기를 이끈 인테르의 레전드 [[산드로 마촐라]]였다. * [[손자]]인 1991년생 필리포 보니페르티도 축구선수로 활동했다. 유벤투스 유스 출신으로 [[유로파 리그]] [[맨체스터 시티]]전에 시모네 페페의 교체로 1군에 데뷔하였고 시즌 최종전인 [[SSC 나폴리]]전에는 후반 풀타임을 소화했다. 그러나 재능은 할아버지에 미치지 못하는지 이 경기끝으로 유벤투스에서는 임대를 보냈다. 한동안 임대 뺑뺑이를 돌다가 유벤투스에서는 싹이 안보였는지 필리포를 [[파르마 FC]]로 이적시켰다. 그런데 파르마 FC에서도 역시 임대 뺑뺑이 신세였다. 2017년 [[세리에 C]]의 AC 쿠네오 1905로 이적하고 얼마 안가 방출당했고 부상 문제가 있었던 건지 기량의 한계를 느낀 건지 방출 이후 축구 선수 경력 7년만에 선수 커리어를 마감했다. 참고로 필리포는 깨알같이 2011년 [[맨체스터 유나이티드]]와의 [[게리 네빌]] 은퇴 기념 친선 경기에 출전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